인왕 아래 머물다.
우리들의 날은 차츰 줄어들고
출석부가 만들어 준
만남의 끈도 점점 짧아집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내달린
인왕산 아래 뜨거운 학구열이
광화문 데모 함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흘러가네요.
넉넉한 봄비에
청계천으로 흘러가는
기린교 아래의 푸른 물빛 속으로
서촌 배움터의 얼굴들
한 명 한 명 떠올려 보면
구름에 가끔 얼굴이 흐려지고
바람은 목소리를 삼키겠지요.
먼 후일 주름진 내 기억에
불현듯 통인시장 지나
수성동 계곡이 생각날 때,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우연히 보게 될 때면
인왕산 능선에서 바라본
황홀한 저녁노을처럼
애잔한 그리움에 젖기도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