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함께 거닐어 볼까요/정동윤
경복궁 옆길
청와대가 곧장 보이는 곳
송백을 그린 솜씨보다
고마운 마음 듬뿍 담긴 세한도의
추사 집터에서 시작하면 좋지요.
혹
영조 대왕께서 하사하셨을까?
영험한 나무 통의동 백송은
후계목에게
일제의 부당함에
침묵으로 저항하며
성장을 멈춘 의지를
뿌리 끝까지 분명히 전하고
겨우 잠들지 않았을까?
노태우 대통령 시절
백송살리기 위원회 만들어
깨워 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배고픈 예술인의 보금자리
반듯한 보안여관에서
이상과 이중섭의 눈두덩이가
퉁퉁 부어 일어났고
소월의 아이들이
눈물 젖은 밥을 먹고
시인부락 동인들 발걸음이
자박자박 들려올 것 같지요.
청와대 경비대가 지키는
옛 진명여고 자리엔
새 교육의 문을 연 엄귀비,
그 파란만장한 삶의
희미한 자취라도 있었으면...
아마 이곳이 아니라도
분명 잘 챙겨 놓았을 거야.
진명 수석 졸업한
나혜석의 사랑도 파란만장.
춘원의 집은 열려있고
골목 해공의 집은 닫혀있는데
스치듯 골목을 빠져 나가면
청와대 앞뜰 무궁화 공원 가기 전
동네 이층집 난간을 타고가는
능소화의 줄기에서도 세월이 보이죠
병자호란 때 척화파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청음 김상헌의 시조 한 수
자신의 집터에서 낭랑하게
들려 오는 것 같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3상 2광 5수 6창이라 불리는
장동김문의 수재들
김창집 집안에서만
왕비 3, 영의정 4, 좌의정 3,
판서 13 명을 배출하여
왕을 무능하게 만든 세도
당파의 색깔마저 옅어졌지만
대원군은 견디기 힘들었어
그들과 가까이 지냈던
그림이 뛰어난 겸손한 선비
겸재 정선도 이웃 마을에 살며
인왕제색도를 그렸다.
명분보다 현실
조선 왕조를 살려놓으니
굴욕을 맛본 척화파 호통에
최명길 후손은
조용히 도성을 떠나
강화도에 양명학 공부하며
뿌리 내렸다는데...
지금은 10.26 총소리 이후
역사를 바로 세운다며
수많은 역사의 현장을
고무 지우개로
쉽게 지워버린 통치자의
막무가내 철학으로
궁정동엔
무궁화 꽃만 애국인양
잔뜩 심어 놓았네요.
자하문길 건너면
말 못하고, 앞 못 보는
천사들의 학교 옆에는
백사의 후손 이회영 여섯 형제
600억 재산 처분하여
만주에서 독립운동 자금으로,
후손 이종찬이 만든
이회영 기념관엔
찾아오는 발길이 뜸해요.
수성동 계곡 입구엔
기린교가 나란히 복원되었고
청계천 발원지 계곡은 말라
안평대군의 그림자가 스치고
윤동주 하숙집 옥인동엔
일제 가옥의 흔적이 배여있고
일본인이 붐볐던 통인시장도
새단장한 후 바쁘다.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동네
외래어 간판은 조심해야죠
한글로 "지에스"를 먼저 쓰고
영어 "GS"는 얌전하게 비켜섰다.
서얼 출신 김가진도
3일 천하 갑신정변 후
과거의 병과에 합격한 뒤
바쁜 나라 일 마치고
대동단 총재 되어
독립운동으로 지새웠는데
그의 집은 토속촌 간판으로
지금 삼계탕을 끓여
일본인에게 중국인에게도 팔아
큰 길가에 건물 부지 장만 했네.
골목골목 기술 자랑
가세를 일으키고
문화를 향유하던
사대부 못지 않은 글솜씨
송석원 시사회
위항문학의 꽃들은
전국으로 흘러갔고
기술자 전문가 후손들은
청계천 주변으로 흘러가
남은 문학만 배가 고프다.
자하문 터널 못 미쳐
어느 학교 뜨락의 붉은 소나무,
반송은 참으로 우아했지요
그 아래 청운초등학교는
송강 정철의 집터
속미인곡 사미인곡....
나중에 읽어보려 남겨두었지.
서촌의 숨은 이야기들
압축하고 압축해도
길게 느껴지네.
못다한 이야기는
함께 걸으며 천천히
조곤조곤 옛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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