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었다
어둠이 삼켜버린 비 내리는 도시
불현듯 남산에 가고 싶었다.
필경 인적은 없고 산길은 적막하리라.
남산은 정적에 묻혀있고
성곽을 비추는 조명은 가물가물
N 타워 초록 기둥 불빛만
밤바다의 등대처럼 환하였다
마침 걷기 좋아하는 동행이 있어
어둠이 밝음보다 아늑했고
젖은 낙엽 밟는 가을의 소리는
한결 촉촉하였다
섬이 되어버린 남산
도시의 불빛이 바다를 이루고
어둠의 파도 소리가 일렁이며
은하처럼 흐른다.
남산의 배꼽,
팔각정에 앉아 깊어가는 가을의 향기
구르몽의 '낙엽'을 불러내고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도 소환하였다
아궁이 속 불씨처럼
검정과 붉음의 조화는 익숙했고
한강의 다리는 불빛 애벌레 되어
밤새도록 꿈틀거린다
야경에 취해 어둠에 취해
젖은 가을을 품고 내려오다
번개처럼 스치는 불안감 아뿔싸,
팔각정에 두고 온 내 휴대폰!
십 분을 내려왔으니
오른 데는 두 배는 더 걸릴 터
관상동맥 걱정에 뛸 수도 없고
재치 있는 동행이 앞장섰다
그의 배낭을 내가 들었고
그는 날듯이 팔각정을 향했다
미소 지으며 내려오는 그와 함께
장충동 족발 집으로 흘러갔다.
가을밤의 산책 즐거운 해프닝
술맛 당기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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