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폐차와 나팔꽃/복효근

능선 정동윤 2011. 8. 18. 09:59

폐차와 나팔꽃/복효근

 

 

폐차는

부활 같은 건 꿈꾸지 않나 보다

쓸 만한 부품은 성한 놈들에게 내어주고

폐차장엔 끝끝내

끌고 온 길들을 놓아주고 버린

분해되는 낡은 차가

그래서 평화스럽다

영생을 믿지 않아 윤회가

시작된 것일까 벌써

나팔꽃 한가닥이 기어올라

안테나에 꽃을 피웠다

비켜라 경적을 울려대며

회생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고

달릴 줄만 알았던

한참,광나던 시절엔 어찌 알았으리

필요로 하는 것들에게

하나하나 내어주고

마지막 끝자리마저 나팔꽃에게 내어주고

제 몸이 비어질수록 채워지는 햇살의 따스함

폐차는 성자처럼

나팔꽃이 시들 때 까지만

지상에 남아 있기를 기도할 지도 모른다

 

폐차가 아름다운 어느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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