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어떤 제다법/복효근

능선 정동윤 2011. 8. 18. 09:34

어떤 제다법/복효근

 

 

전주에 가면 다문이라는 찻집이 있어

그 쥔장은 야생차를 고집하는데

그 냥반따라 순창 화문산 야생차를 따러 갔다

여린 찻잎 다시 말하면 차의 잎

차의 입, 차의 입술

햇살과 바람과 이슬을 마시는 차나무의 입을

그 야들야들한 갓난아이 입술 같은 찻잎을

잔인하게 또옥똑 따는 것을 보고

다시는 차를 마시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 여린 잎순들을 달구어진 가마솥에 넣고 덖어서

꺼내어 덕석 위에 쏟아놓고

손으로 부벼서 찻잎에 상처를 낸다

찻물이 잘 우려나오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기를 아홉 번이나

아아 잔인하고 모진 제다법이여

다시는 차를 마시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완성된 차를 시음해보시라

갓 만든 차를 다관에 담고 물을 붓자

영영 죽어버린 줄 알았던 찻잎들이

잘 익은 물 속에

제가 마신 화문산의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다 풀어 놓는데

아홉 번의 가마솥 모진 연단을 연록색 향기로 빚어내

놓는데

그리곤 아무 일 없다는 듯

애초 나무에 매달렸던 그 형상으로 돌아가

물고기처럼 다관 속을 노니는데

그 차를 마시고도

그 찻잎의 흉내를 한 자락이라도 내지 못할 량이면

이승에서건 저승에서건

다시는 다시는

차를 마시지 낳으리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