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틈, 사이/복효근

능선 정동윤 2011. 8. 18. 09:18

틈, 사이/복효근

 

 

잘 빚어진 찻잔을 들여다본다

수없이 실금이 가 있다

마르면서 굳어지면서 스스로 제 살을 조금식 벌려

그 사이에 뜨거운 불김을 불어 넣었으리라

얽히고 설킨 그 틈 사이에 바람이 드나들고

비로소 찻잔은 그 숨결로 살아있어

그 틈, 사이들이 실뿌리처럼 찻잔의 형상을 붙잡고 있는게다

틈 사이가 고울수록 깨어져도 찻잔은 날을 세우지 않는다

미리 제 몸에 새겨놓은 돌아갈 길

그 보이지 않는 작은 틈, 사이가

찻물이 새지 않게 한단다

잘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 벽도

양생되면서 제 몸에 수많은 실핏줄을 긋는다

그 미세한 틈 사이가

차가운 눈바람과 비를 막아준다고 한다

진동과 충격을 견디는 힘이 거기서 나온다고 한다

끊임없이 서로의 중심에 다가서지만

벌어진 틈, 사이 때문에 가슴 태우던 그대와 나

그 틈, 사이까지가 하나였음을 알겠구나

하나되어 깊어진다는 것은

수많은 실금의 틈, 사이를 허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네 노여움의 불길과 내 슬픔의 눈물이 스며들 수 있게

서로의 속살에 실뿌리 깊숙이 내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