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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결혼식이었네

유쾌한 결혼식이었네 일요일의 결혼식이라 예배당 가는 일 잠시 멈추고 자네 아들의 혼례에 참석했네 단순하지만 뜻깊고 엉뚱한 듯 보였지만 진지했고 궤도 이탈인가 했는데 미소 번지게 하는 정말 유쾌한 결혼식이었네. 한때 바빴던 경조사 시절 이젠 그런 큰 일도 뜸하여 자주 만날 수 없는 보고 싶었던 친구들 소환하여 반갑게 만나게 해 주어 맑은 소주잔 기울일 수 있었네 건성으로 인사하고 총총 떠나야 할 만큼 그리 바쁘지 않은 우리는 넉넉한 시간을 움켜쥐고 세월의 무게도 가볍게 들며 일상의 통증도 '건강' 수다로 마취시켜 버렸지 단풍잎 지는 가을 날 차량을 쫓아가며 흩날리는 낙엽의 안타까움조차 편안하게 보이는 흐린 날의 유쾌한 잔치였네.

걸으며 세운 노후대책

걸으며 세운 노후 대책 /정동윤 남산 힐튼호텔로 오를 때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 좁아진 관상동맥 탓일까 노년의 꿈이 밀려나는 것 같구려 내리막 끝에서 만난 숭례문 편안하게 홍예문으로 들어가 천정의 청룡 황룡 올려다보며 용의 발톱도 세어보았어요 한결 가벼운 발길로 월대 수리 중인 대한문 옆에서 혈관의 아픔 살피며 나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았죠 앞으로의 발걸음은 우리 문화 산책이 어때요? 좁은 관상동맥이 벌어지듯 화살처럼 광화문에 닿는구려. 물결 반짝이는 경회루 연못에서 노년의 안식 같은 잔잔한 윤슬을 바라보고 향원정 돌아 신무문으로 갔어요 상품이 된 청와대 뜰에서 '길 위에 피어난 詩의 여행'은 의미를 찾으려는 내 의지 인문의 향기 담는 노후대책이죠.

가을빛 첫사랑

가을빛 첫사랑/정동윤 초등 4학년 11 명의 남학생 오늘 나의 인왕산 동행자들, 목표는 독립문 공원에서 무악재 하늘다리 건너 인왕산 중턱 '해골바위'까지, 자유롭게 걷되 전체는 흩뜨려지지 않도록 주의 사항을 다짐하고 쌀쌀한 가을 산을 오른다. 하늘다리 건너 오동나무 계단까지 오는데 5 명의 속도가 자꾸 쳐진다. 그중 한 친구가 같은 반 여자 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 생각을 모으느라 늦었단다. 내가 만들어 준 강아지풀 토끼가 손끝 하트처럼 보이고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꽃잎도 모두 하트로만 보인다는 안경 낀 고백의 주인공은 해골바위까지 오는 동안 계단을 몇 번이나 헛디뎌 넘어질 뻔하였다. 해골바위 아래 경사진 너른 바위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햇살과 하늘과 바람을 느끼며 고요한 명상을 끝낸 뒤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