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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겨울

나무의 겨울/정동윤 겨울, 참 고마운 휴식의 계절이죠 봄부터 가을까지 얼마나 바빴고 분주했나요 꽃 피우랴, 나뭇잎 내랴 열매 맺으랴, 단풍 만들랴 식량 저장하랴, 낙엽 보내랴 모든 일 마치고 비로소 따뜻한 땅속으로 다리 뻗으며 긴 휴식에 들어갑니다 바람 불어도 눈이 쌓여도 아주 작은 센서만 남긴 채 우리는 모두 땅속에 깃듭니다 어느 날 해가 길어지고 기온이 올라갈 즈음 기지개 켜고 위로 올라가겠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 긴 겨울의 달콤한 휴식 걱정마세요,제가 사는 방식입니다.

백세청풍 백운동천

백세청풍 백운동천/ 정동윤 이야기를 많이 품고 있는 산 유서 깊은 인왕산 깊숙이 들어가면 백세청풍 골짜기는 김상용의 집터 백운동천 계곡은 김가진의 별장 인왕산의 동쪽 창의문엔 인조반정의 공신록이 적혀있고 그 아래 깊고 조용한 동네가 청풍과 백운이 합친 청운동 청운동은 안동 김씨 집성촌 겸재도 그 그늘에서 출세했고 송강도 근처 마을에서 놀았고 위항문학 모임도 인왕을 바라보았다 조선의 절개와 지조의 상징인 청음 김상헌의 형은 김상영 병자호란으로 강화도가 함락되자 76 세에 폭약 터뜨려 자살했다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갈 때 가노라 삼각산아 청음의 시조비는 궁정동 안가에서 들려온 총소리에 역사의 아픔 안고 펑펑 울었으리라 김상영의 11 대손 김가진은 서출 갑신정변 이후 적서 차별 폐지로 대한제국 법무대신까지 올랐..

가을, 안녕

가을, 안녕/정동윤 짧은 만남이었지만 잘 헤어지고 싶은 가을, 그가 베풀어준 단풍과 낙엽 높은 하늘 풍성한 열매는 진정 은혜로운 축복이었다 가을이 담긴 산의 다양한 몸짓을 보며 이끼 낀 역사의 울타리와 계절 품은 나무 사이로 걷는 우리의 의식은 경건하였다 묵은지와 잘 볶은 닭 향기로운 커피와 달콤한 빵 그리고 다채로운 이야기와 아이들 같은 맑은 심성은 가을을 향한 정중한 예의 따뜻한 영상의 날씨 마른 낙엽 밟는 소리와 슬픈 역사의 남한 산성 계절 품은 고목의 침묵은 이별을 위한 거룩한 배경 안녕, 가을이여 빵집 탁자에 둘러앉아 밝은 얼굴로 빵을 나누며 미소짓는 사람들 표정처럼 우리의 가을은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