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디오게네스/정동윤 유난히 남루한 노숙자 서울역 광장 구석 벽에 모로 누워 지나가는 세월 멍하니 바라본다 구세군 냄비의 딸랑거림도 급식 봉사자의 빵 봉지 유혹도 눈곱 떼기보다 귀찮아 빵 한 쪽 얻기 위해 긴 줄 오들오들 기다리느니 차라리 굶는 게 낫다 스르르 잠든 사이 누군가 빵 봉지를 두고 갔다 구세군 종소리는 아련히 딸랑거리는데 빵 봉지 뜯기는 식탐으로 허겁지겁 먹어대는 눈치 없는 거지 같아서 싫다 누가 봉지를 찢어 빵 한 조각 입에 넣어주면 못 이기는 척 씹기는 하겠으나, 그나마 다행인 건 주말마다 들리던 데모의 악다구니가 눈 내리는 오늘은 잠잠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