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을 넘으며/정동윤 인왕산 북쪽 홍제동 개미마을 언덕 위엔 하늘로 달리는 묵직한 기차바위에 보름 저녁달 단추 누르면 도시는 단풍색 불로 반짝이고 달도 노랗게 불이 켜진다 밤하늘 동그란 등불 치마바위 아래 단풍색 도시는 은하의 한복판을 통째로 오려 네 개의 산을 기둥으로 박아 달걀 모형의 울타리 안에 누이니 지상의 은하수는 잠들지 못한다 별빛으로 써내린 오천 년 일기 왈본에 두둘겨 맞은 몇 쪽의 역사 상처가 묻힐까 도성 성돌 아래 새벽이슬 내릴 때까지 두 눈 부릅뜬 파수꾼의 조명은 쉬 잊을 수 없는 날들을 곱씹는다 인왕의 남쪽에 하숙한 시인 수성동 계곡을 거닐던 윤동주 '또 다른 고향'을 숲에서 그려보며 일본을 왈본이라 바꿔 불렀지만 이름까지 빼앗긴 후쿠오카의 단발마 그 감옥의 절규는 아직도 들려오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