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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한잔했소

어젯밤에 한잔했소/정동윤 노련한 신념의 셔터에 일상은 섬세한 예술이 되고 예리한 역사의 붓끝에서 통 큰 가을은 숨을 멈추고 감성 어린 추억에서 촉촉한 시가 흘러나오는 늦가을의 만남은 가로등 불빛 아래 흘러 우리의 불콰한 얼굴은 고매한 풍경으로 떠돌다 또 한잔 하고 헤어진 자리엔 그리운 액자만 걸려있소 시선이 다르고 구도가 어긋나고 느낌이 차이나도 뿌리 깊은 우리 삶은 늘 그 자리 그대로 그러나 서로 다른 풍경처럼.

경의선 숲길

경의선 숲길/정동윤 경성 신의주 만주 시베리아 영국의 런던까지 내달리다 휴전선 철조망에 막혀 숨 가쁜 기적소리는 들풀이 되고 공덕동 로터리 지나 경의선 철로 위에 덜컹거렸던 검은 철마의 바퀴 소리는 지하 도시로 숨어 버렸다 지하를 달리는 전철에 왕따 당했던 녹슨 철길이 우체통 옆 문화로 번역되고 철로는 숲길로 살아났다 줄지은 나무들 사이로 경의선 꿈은 철새가 되어 시베리아로 향한 고매한 날갯짓 북쪽의 밤하늘로 솟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