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정동윤
겨울에서 봄으로 오는 길목
흑백의 건조한 풍경
겨울을 지독하게 앓아본 사람은
아지랑이 봄빛이 분에 겹도록 반갑다
흑백의 풍경을 뚫고 돋아나는 새싹들
한바탕 꽃 잔치로
겨우내 지친 마음 앞에
봄 한철 내내 꽃 피워도 몰랐다.
이제 겨우 삶의 여유가 생겨
주변을 돌아보니
장마와 호우로 물 잔뜩 마시고
여름 햇살 뭉텅뭉텅 잎새로 찔러 넣고있는
느릿느릿 꽃 피우는 배롱나무를 본다
매미들 악으로 충성 외치고
봄꽃들 열매 달고 달려와 인사하면
꽃은 이렇게 피운다며 석 달 열흘 불 탄다.
지나가는 바람 스치는 눈빛에도
건들건들 손 흔들며 붉은 웃음 흘리고
매미들의 한 생애가 가고
귀뚜라미 울어야 끝나는 배롱꽃 화염
진지하지만 엄숙하지 않는
남쪽이 고향인 배롱나무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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