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주말의 몽상

능선 정동윤 2013. 12. 27. 21:34

주말의 몽상

산능선

끙끙 앓는 거대한 산의 핏줄 속으로
보이지 않는 이끌림에 줄 지어 들어간다.
서서히 눌려지는 주사액처럼
방울방울 산길로 밀려간다.

도심에서 밀려 온 피곤
풀섶에 가라앉을 때
우리는 일주일간 찌든 일상
다시 베낭에 채워 오른다
산은 늘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헌혈 기다리는 적십자 버스처럼.

북한산뿐 이었다, 나에게는.
윽박지르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길이.
부시럭되는 낙엽의 불만에
아스팔트에서 부서지는
참혹한 가을을 상기시켜 주고,

비봉 아래 비탈진 바위에 모여 앉아
물 한 모금 나누어 마실 때는 주연배우
산에서 벗어나면 단역배우처럼
긴 대사에 목 말라 한다.
욕구불만에 우는 아이처럼.

반짝거리며 출렁이는 물결과
낮은음자리표 같은 파도와
물안개 피어나는 뜨거운 열정이 그립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산의 나직한 울림보다
포효하고 요동치는 바다의 활력같은...

삶은 물결쳐야 하고
거침없이 흘러야하고
푹 쉬고 싶을 만큼 솟구쳐야하고
물 속으로 뛰어 들고 싶을만큼
소용돌이쳐야 하는데...

계절의 유혹에 무작정 찾아 온 사람들
찬바람이 불면 산의 열병과 함께 진정되고
그들은 배설물처럼 빠져 나가
산의 허명을 들먹이며
술잔으로 산을 씻어 버린다.

몽상에 빠진 귀갓길 지하도에
사람의 형상이 그려 진 하얀 스프레이
지나는 사람들을 우울하게 하지만
쉬 지워지지 않는
불황의 그림자 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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