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린 남산 비 내린 남산/정동윤 벚꽃이 군림할 때 서울의 인왕과 북악에서는 산불이 검게 피어올랐다 때맞춘 그윽한 봄비 남산 산책로 가장자리엔 하얀 벚꽃 개울이 졸졸 흐르고 떠나는 벚꽃 잔치에 초대받아 찾아온 수수꽃다리가 봄을 챙긴다 계곡마다 물길 라일락 뿌리 흠뻑 적시고 보랏빛 의미 촉촉이 재촉하니 벚꽃에 빼앗긴 눈길 향기의 수수꽃다리로 옮겨 빗속에도 따뜻한 미소가 고웁다 나의 이야기(市 능선) 2023.04.06
이별 준비 이별 준비/정동윤 이 봄에 잠시 떠나노라 고마웠던 산들아 그리울 골목들아 눈 감고도 찾아갈 오솔길아 다시 올 때까지 잘 있거라 해 질 무렵 낙조들아 불콰한 구름들아 홀로 뜨는 저녁 별아 함께 가자꾸나 하늘을 달리는 태양 마차야 그리움 사무치는 달빛 수레야 태평양 날아날아 함께 떠나자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렸던 가슴아 일 년 내내 한 계절인 땅 가슴 시린 날이 사그라질까 익숙한 내 땅의 아침 공기야 참으로 귀한 오전의 일상들아 즐거웠던 오후의 외출아 가을이 올 때까지 잘 있거라. *4월 20일에 떠나 9월 중순쯤 돌아올 예정입니다. 나의 이야기(市 능선) 2023.04.05
목련 우러러보다 목련 우러러보다/정동윤 다른 곳보다 늦어도 참 늦은 서울역 7017 콘크리트 정원엔 이제야 봄인 듯 의기 드높은 목련이 두런두런 꽃을 피우네요 늦은 봄이지만 길 가장자리에 늘어선 집성촌 목련네 친척들은 저마다 빌딩 틈의 조각난 햇살을 곱게 받아 숭고한 생명 자목련으로 올곧게 키워냅니다 이웃 남산엔 벚꽃 인파로 줄을 잇는데 회현동에서 만리동 가는 하늘 공원 고가 정원엔 봄가을이 늦어도 계절을 두루 꿰찬 자주 목련의 겨울은 좀 이르답니다 빌딩의 그늘이 남모르는 아픔이지만 짧게 주어진 햇볕에 감사하며 흐린 날도 환하게 웃는 차분하고 유유자적한 하얀 목련의 미소에 무너집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3.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