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밑의 장작/정동윤 장작이 파란 불꽃 일구지 못하면 그저 불쏘시개일 뿐이지요 시골 집 처마 밑에 흙벽 따라 쌓아둔 나무토막들 굵직한 놈 하나 골라 아궁이에 던지면 새파랗게 타올라야 장작이죠 어느 봄날인들 꽃피우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어느 여름인들 그늘 만들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지금은 온돌을 데워야 하는 시절 흘러간 영광에 취해 아련히 추억만 곱씹을 수는 없죠 뒤돌아보며 나아갈 수 없는 풀꽃처럼, 물기 말리며 불꽃 피워내는 우리네 인생처럼. 내 휴대폰 시의 창고에 미완성된 시 한 편이 없다면 꺼내서 퇴고할 글 한 편이 없다면 나는 더 이상 장작이 아니겠죠 부엌 바닥에 흩어진 알량한 불쏘시개일 뿐.